히 10:19-25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

 

어느 초등학교 수학시간이었습니다. 교사가 Tom에게 물었습니다. "Tom아, 지금 $10를 손에 쥐고 있는 데, 엄마에게 $5를 더 주세요." 하면 너는 몇 달러가 되는 것이니?" Tom이 대답했어요. "$10요!" 선생님은 안타까워하면서 말했습니다. "Tom아! 너는 계산을 잘 못하구나!" 그때 Tom이 말했어요. "선생님은 아직 우리 엄마를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엄마는 내가 $10을 갖고 있을 때, $5을 더 달라하면 절대로 안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산수는 잘 아셨습니다. 그러나 탐의 엄마는 잘 몰랐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자로서 잘 살아야 하는 것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한 잡지에 실린 내용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이런 광고를 신문에 냈습니다. “저에게 전화를 걸어 주시는 분에게는 10불을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고독한 노인이 이런 광고를 냈겠습니까?

 

영국의 리버풀 항구에서 정기 여객선이 출항하려고 했습니다. 한 신사가 배에 오르다 말고 돌아서서 선착장으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배에 오른 많은 사람들이 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배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신사는 자신을 환송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몹시 서운했습니다. 그는 선착장에서 물끄러미 배를 구경하고 있던 어린 소년 한 명을 찾아내었습니다. 소년에게 동전을 한 움큼 주면서 자신이 배를 타고 떠날 때 하얀 손수건을 흔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은 고독한 존재입니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고독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살고 있지만 진정한 이웃이 없어서 고독을 느낍니다. David 리즈만이라는 미국 사회학자가 이를 <군중 속의 고독, 고독한 군중 The lonely Crowd>이라고 불렀습니다. “군중은 있어도 공동체는 없다. 이것이 현대의 비극이다.” 여럿이 모여 있다고 해서 저절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공동체란 삶을 같이 나누고 인생을 나누고 분명한 목표를 향해 함께 행진할 수 있는 집단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인은 도시화로 인하여 대중 사회에서(즉 아무리 이웃에 사람이 많이 있어도) 내면적인 고립감과 고독을 느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양로원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 유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이를 강하게 느낀다.

<건강한 작은 교회> 데니스 비커스의 책. 그는 이 책에서 21세기의 핵심 신학 용어는 관계라고 말한다. 21세기 교회는 제도라기 보다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는 장소라기 보다 “우리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묻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을 업그레이드 해 주는 곳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어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진 부러운 4 가지가 있습니다. 1) 같은 철학과 가치를 전하는 탈무드, 2) 유대인 공동체 - 유대인 연맹이 조직되어 있고, 그 아래 많은 비영리 유대인 단체들을 후원하고 있다. 3) 사람(유대 민족) 4) 네트워크 : 유대인들은 소수민이지만 동족끼리 네트웤이 너무 잘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특히 라티노와 연대를 잘 하고 있다.

현대 사회를 고슴도치 사회라고도 합니다. 서로 가시를 가지고 있어서 힘들게 삽니다. 하지만 서로가 혼자 살 수 없어서 함께 살아야 합니다.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격려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모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는 공동체 회원들 간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합니다. 대표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 해답을 받아 올 때 서로 격려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걸어가야 할 진정한 목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함께 하는 격려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격려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일 주일 동안 많은 문제에 시달립니다.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 심지어는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교우들끼리도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들을 용서하시는 사실을 체험합니다. 우리들의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목표를 향해서 다시 달려갈 수 있는 삶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교회가 참으로 복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얼마나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 모두 아름다운 격려 공동체로 자라기 위해 주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 열심히 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5절은 말씀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모이자).”

우리가 남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모여야 합니다. 모여서 이웃에게 선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지냈는지, 힘들지 않은지, 기도해 줄 일이나 도와줄 일은 없는 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격려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다름 아닌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격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 모여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모여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tent)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잘 모였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언제 모였습니까? 안식 후 첫날, 즉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한 번만 모였습니까? 사도행전 2장 46절은 초대교회가 얼마나 자주 모였는지 말씀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모여서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전도에 힘썼습니다. 우리들이 날마다 모이는 것이 번거롭고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이는 데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일주일에 주일 한 번 모이는 것은 성도가 서로 격려하기에 너무나 부족합니다. 우리 모두 주일뿐 아니라, 수요일, 새벽에 모이기를 힘쓰시길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가족의 만남을 경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열심히 모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모두 열심히 모여서 귀한 만남의 사건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두 가지 만남을 경험해야 합니다.

1) 예수님과 하나님을 만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18:20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 중에 계신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장막 주위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왜 그들이 장막을 중심으로 모였습니까? 그 장막 안에 휘장이 있습니다. 그 휘장 안에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 안에 언약궤가 놓여 있습니다. 주님이 바로 그 언약궤 위에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셨습니다. 장막 주위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찬양하고 기도하는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 예배드리는 대상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감격이 예배 중에 충만하길 빕니다.

며칠 전, 한국 MBC TV 방송, 대단한 인기인 <나가수, 나는 가수다> 예능 프로그램에 CCM가수인 소향씨(김소향)가 출전했다. 첫 출연이었는데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시아버지가 목회자이시다. 모 신문사와의 인터뷰. "소원이 무엇입니까?" “유명해 지는 데 관심이 없다. 높이시는 분도 하나님, 낮추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고 저의 노래를 듣는 분들이 주님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참으로 멋진 소원 아닙니까?

 

2) 하나님의 가족, 형제자매로 만나라고 하십니다.

요 1:12는 말씀합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히 10:19는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구약 시대에는 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장막에는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성소 안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순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전 안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curtain)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마 27:51).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를 들어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돌아가시던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할렐루야! 히 10:20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예수)의 육체니라.”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귀중한 특권입니다.

우리 모두 모임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또한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드리고 찬양하는 가운데 서로가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깨닫게 됩니다. 서로가 형제자매들임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서로 격려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양을 드렸습니다. 동시에 서로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서로 목적지를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고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는 천국의 가족들입니다. 서로 격려하며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시 84:5,7,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시계추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계추는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왔다 갔다 합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이 가끔 발생합니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다가 여러 모양으로 마찰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작은 어려움에 몇 번 부딪치면 아예 교회 일에 흥미를 잃습니다. 마치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합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면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주일에 교회를 나와도 이웃을 피해 예배만 드리고 갑니다. 그러면 위로와 격려를 나누는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교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역이 없습니다. 사역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전도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격려와 위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을 싫어하고 피하면 사역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문제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차 용납하고 서로 격려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격려는 모임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임을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고 또 형제자매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를 만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곁에 있어주고 서로 좋은 의미에 자극을 줍니다. 서로 위로하고 도와줍니다.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이것이 참된 격려입니다.

 

3. 무엇으로 격려해야 합니까? 격려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히 10:22-24에 세 가지 중요한 격려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1) 믿음을 격려해야 합니다. 22절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 모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도록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로 주님께 나아가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날 때마다 온전한 믿음,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나아가도록 피차 믿음을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2) 소망을 격려해야 합니다. 23절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성경은 우리를 위해 7천 여 가지의 소망의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살다가 보면 그 소망이 자꾸 흔들립니다. 이럴 때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저 영원한 미래의 기업, 천국에 대한 소망을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해 주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해 흔들리지 마세요. 서로를 격려하세요. 주님이 좋은 일을 준비하셨음을 믿고 힘내도록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소망을 주는 것이니라."

며칠 전, 북 아프리카 트리폴리에서 55명이 보트로 이탈리아로 출발했다. 도착했으나 강풍을 만나 다시 바다쪽으로 떠밀려 나갔다. 보트의 바람도 빠지고, 식수가 다 떨어져 극심한 갈증 속에서 그들 54명은 죽어갔다. 오직 한 사람만 살아남았다. 그는 15일간 바다를 표류하면서 보트 잔해와 석유통에 매달렸다. 물 대신 바닷물을 마시기도 했다.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소망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로 맺어진 가족 공동체를 생각할 때 소망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천국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도 서로 격려하며 함께 천국으로 나아가도록 하자

 

3)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하십니다.

24절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며." 여기서 선행은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안일과 나태 속에 있는 형제들을 자극하여 일어나게 하라는 뜻입니다. 미워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 하도록 자극합니다. 악한 일을 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행위를 하도록 자극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서로를 자세히 살피라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날까지 우리 모두 믿음 소망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을 격려하시는 복된 공동체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격려의 삶을 사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격려의 가장 좋은 모델이십니다. 요 13-14장을 보세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져야 할 것과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제자들은 참으로 우울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슬픔을 금치 못했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사랑하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팔리어 박해와 고통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주님이 제자들을 격려하며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사랑으로 격려하셨습니다. 제자에게 상처를 받고 배신을 당하는 아픔 가운데서도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또 14장 1절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주님은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과 주님을 믿으라고 믿음으로 격려하십니다.

그리고 14장 3절입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은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미래에 다시 오셔서 다시 만나게 될 소망으로 격려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주님처럼 예수의 피로 맺어진 가족들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이웃을 격려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 믿는 사람의 아름다운 열매, 전도의 열매를 맺으시길 축원합니다.